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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MISIA의 곡에 맞춰 고개를 까닥거리며 두 시간째 쓰고 있는 일기는 죽음에 대한 내용이다. 어째 유서처럼 쓰고 말았다, 하고 이쿠코는 생각한다. 물론 암울한 기분으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밝고 열린 기분으로 쓰고 있는데.

  파란색 볼펜으로 쓴 일기는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죽음, 그것이 내게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오든, 나는 그때, 그때까지의 인생을 행복했다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 삶을 내게 준 부모님에게, 옆에 있어준 언니들에게, 초등학교 음악 선생님에게, 한 동네 두부 가게 할머니에게, 중고등학교 동창생들에게, 시마오 씨와 다니구치 씨와 사에키 씨에게・・・・・・.'

  이름이 한 페이지나 죽 나열된다. 그리고 성서에서 인용한 글귀와 『밤과 안개』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 과거에 친구와 나눴던 대화의 단편들이 적혀 있고, 마지막은 이런 말로 갑작스럽게 끝난다.

  '따라서, 내가 언젠가 죽더라도, 내 주위 사람들은 조금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다 쓰고 난 이쿠코는 만족스럽게 노트를 덮고, 기지개를 켰다. 밀크티를 끓여 천천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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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쿠코는 옛날부터 한 걸음 들어섰을 때의 냄새로 타인의 집을 평가하는 버릇이 있는데, 기시 씨 집에서는 복잡한 냄새가 났다. 현관은 서양식인데 먹물과 유부초밥이 섞인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모직물에서 나는 것처럼 텁텁한 냄새는 깔개와 슬리퍼 꽂이에서, 해묵은 교회 비슷한 눅눅한 나무 냄새는 계단 언저리에서, 써늘한 흙냄새는 현관 안쪽에 있는 거대한 우산꽂이 부근에서 각각 풍기는 것 같았다. 인공적인 오렌지 향은 가구 닦는 광택제나 유리용 세제류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다.

  물론 부엌에서는 홍차 냄새가 풍겼다. 홍차는 향이 너무 강해 이쿠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애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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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감은 거대했다. 거대했지만, 메울 길이 없다는 것을 하루코는 알고 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고 하루코는 생각하고 있다. 상실감은 그저 여기에 '있을' 뿐이지, 그것에 얽매이거나 빠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밖은 공기가 맑은 가을이다. 하루코는 가을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혼자 여행을 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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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いわずらうことになく、愉しく生きよ (2007.06)

江國香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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